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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시론] 너무 낮은 병원 문턱이 전염병 키운다 (기모란 교수)

등록일
2015-06-11
조회
2536
파일

국제암대학원대학교 기모란 교수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6/10/2015061004269.html


메르스 첫 환자가 한국에서 증상을 나타낸 것이 지난 5월 11일이고, 이후 네 곳의 의료 기관을 거쳐 진단을 받은 것이 5월 20일이었다. 10일간 이 환자를 통해 세 곳의 의료 기관에서 환자가 발생했고, 두 번째 의료 기관이었던 평택성모병원에서는 36명 발생 환자 중 28명이 첫 환자를 통해 감염되었다. 평택성모병원에 있던 14번째 환자도 평택굿모닝병원으로 옮겨 입원해 있다가 시외버스를 타고 삼성서울병원으로 와 응급실에 입원해 3일 동안 47명에게 전염을 일으켰고 그 숫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16번째 환자도 평택성모병원에서 대청병원과 건양대병원을 거쳐 가면서 대청병원에서 8명, 건양대병원에서 9명의 환자가 발생하였다.

우리나라 의료 전달 체계는 1차 의원에서 진료의뢰서를 받으면 2차나 3차 병원을 갈 수 있고, 진료의뢰서가 없다면 아무 병원이나 응급실로 가면 된다. 병원을 방문할 수 있는 횟수의 제한이 없고, 어느 병원을 가는지는 본인이 선택할 수 있다. 병원을 가기 위해서 미리 전화로 예약할 필요도 없으며 병원에 가기 전에 어느 병원에 가는 것이 좋은지 미리 상담을 받을 필요도 없다. 그동안 한국은 이렇게 병원의 문턱을 낮추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해 왔고 그런 점에서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편리한 의료 전달 체계는 자칫 ´닥터 쇼핑´이라고 불리는 의료 남용을 가져올 수 있다. 그리고 더욱 큰 문제는 감염성 질환 환자들이 여러 병원을 전전하면서 감염을 전파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메르스 유행이 바로 이러한 느슨한 의료 전달 체계의 폐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필자가 2년 전 영국에 머물 때 아이가 주말 동안 열도 나고 귀가 아파 일요일 오후에 응급실에 가야 했다. 우리 가족을 담당하는 의원에 전화하니 상담 간호사로 연결되었다. 간호사는 거의 20분 동안 증상을 상세히 물어보고 아이와도 통화를 하여 언제 더 아파지는지, 어지럽지는 않은지 등을 물어보고는 방문 가능한 병원들과 시간대를 알려주었다. 가기 편한 시간대의 가까운 병원을 골라 예약하고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방문하니 응급실에는 우리 외에 환자가 2명 더 있었다. 모두 병원 상황에 맞게 환자가 예약돼 들어오니 응급실이 붐빌 이유가 없었다. 의사의 진료를 받으러 가니 간호사와 상담한 내용이 모두 진료 화면에 나와 있었다. 의사는 기록되어 있는 증상들을 확인하고 몇 가지 검사를 추가로 시행한 후에 치료를 하고 약을 처방해 주었다.

우리나라는 IT 강국이라고 한다. 모든 병·의원 체계가 전산화되어 있고, 전 국민이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을 사용한다. 그런데 유독 병원에 갈 때는 진료의뢰서 한 장만 달랑 들고 간다. 진료 의뢰를 받는 상급 병원은 의뢰서에 쓰여 있는 내용 말고는 환자에 대해 알 수 없다. 환자는 의사를 만나 과거 질병력, 증상, 치료 이력에 대해서 매번 다시 이야기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히 여러 가지 이야기가 생략된다. 만약 이번에 14번, 16번 환자가 급성 호흡기 증상과 발열을 보이면서 10일 동안 치료에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고 악화되었다는 상황을 병원에서 미리 알고 환자를 받았다면 무방비로 감염을 전파시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의료 전달 체계를 다시 검토하여 바로 세워야 할 때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