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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모르는 게 약? ‘가짜 약’ 알고 먹어도 치료 효과 볼 수 있다(김호진, 조선일보)

등록일
2023-01-05
조회
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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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분업으로 의사 처방전이 환자에게 공개되기 시작한 2000년 무렵, 의과대학 교수 처방에 실망했다는 환자들이 꽤 나왔다. 속쓰림, 불안증이 있어서 저명한 내과 교수에게 진료를 받고, 특효약을 먹어서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처방전을 보니 소화제와 비타민이었던 것이다. 환자 증세를 낫게 한 것은 명의에 대한 믿음이었지, 실제 복용한 약이 아니었다. 이런 경우는 모르는 게 약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약효 성분이 없는 가짜약을 먹어도 병세가 좋아지는 것을 위약(僞藥) 또는 플라세보(placebo)효과라고 한다. 위약 효과를 내려면 환자가 그 약의 실체를 모르고 복용해야 하는데, 최근에는 환자에게 가짜약이라고 알려줘도 이와 유사한 효과가 나온다.


◇공개된 위약도 효과 커

가짜약임을 환자에게 알리고 약의 효과를 보는 것을 오픈 라벨(open label) 플라세보라고 한다. 의사들이 임상 연구를 하면서 환자들에게 가짜약임을 모르게 하고 주는 게 찜찜해서 오픈 라벨 플라세보 연구가 시작됐다. 이후 학술지에 다양한 사례가 보고됐다.

교통사고로 목뼈를 다쳐서 심한 통증을 느끼는 환자에게 가짜약이라고 말하고 먹인 후 이어서 강력한 진통제도 복용토록 했다. 4일 후부터는 가짜약만 먹었는데도 진통 효과가 유지됐다. 통증과 설사를 호소하는 과민성 장증후군 환자 80명을 대상으로, 절반에게는 가짜약이라고 말하고 위약 캡슐 2정을 하루 2회 처방했다. 나머지 절반에게는 아무런 약을 투여하지 않았다. 다만 가짜약을 먹는 환자들에게 “위약에는 치료 성분이 없으나, 약을 먹는 행동이 자기 치유를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3주 후, 가짜약을 알고 먹은 환자들이 대조군에 비해 증상이 대폭 개선됐다. 이 같은 오픈 라벨 위약 효과는 요통, 암 관련 피로, 편두통, 무릎 골관절염 등에서 나온다.

◇낫는다는 믿음이 좋은 약

일반적인 플라세보는 가짜약인 줄 모르는 상태서 진짜약이라는 믿음이 통증과 치유에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을 활성화시켜 치료 효과를 낸다. 가짜인 줄 알고 먹는 오픈 라벨 위약은 약을 복용한다는 행동과 뇌의 인식이 플라세보와 유사한 효과를 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의사가 잘 낫게 하려는 치료 과정에서 가짜약을 주는 것이라는 믿음도 플라세보 효과를 내는 데 작용한다.

가짜약을 먹어도 효과를 보는 플라세보의 반대가 노세보(nocebo)다. 효과가 확실한 약이나 치료법이라도 환자가 별로라고 의심하면 약효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김호진 국립암센터 신경과 교수는 “뇌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정도가 달라지는 통증, 불안, 우울 등은 치료에 의심을 가질 때 증세 폭이 더 커진다”며 “어떤 치료 방법이든 환자에게 나을 수 있다는 암시 즉 긍정의 강화를 심어 주면 치료 효과가 올라간다”고 말했다.

진료실 현실에서는 데이터를 따지는 근거중심의학으로 처방이 이뤄지다 보니, 의사들이 환자에게 효과에 강한 확신을 주기보다는 방어진료를 하는 경우가 잦다. 박건우 고려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의사와 환자가 신뢰 관계를 잘 쌓으면, 같은 치료를 해도 치료 효과를 더 크게 얻을 수 있다”며 “건강한 식습관, 운동, 명상 등을 할 때도 이것이 나를 건강하게 만들 거라는 강한 의식을 가지면, 그 자체로 플라세보 효과가 생겨서 건강 행동 실천 효과를 크게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